‘드넓은’ 이라는 말은 가장 보들레르적인 말의 하나로서, 시인에게 있어서 내밀의 공간의 무한성을 가장 자연스럽게 표시하는 말이다. ‘드넓은’ 이라는 말은 보들레르에게 있어서 정녕, 드넓은 세계와 드넓은 생각을 합일시키는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논거가 되어 있다고 함은,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하지만 웅대함이 더 활동적인 것은 내밀의 공간 쪽이 아닐까? 그 웅대함은 외부의 광경에서 오는 게 아니라, 드넓은 생각의 헤아릴 수 없는 깊이에서 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내면 일기 Journaux intimes>에서 보들레르는 이렇게 적고 있다: ‘거의 초자연적이라고 할 만 한 영혼의 어떤 상태들에 있어서는, 삶의 깊이는 그 전체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 외부 광경 – 그것이 아무리 평범한 것일지라도 – 가운데 드러나는 법이다. 그 광경은 그것의 상징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정녕, 우리가 따라가 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현상학적인 방향을 가리켜 보이는 텍스트이다. 외부 광경이 내밀의 웅대함을 펼치는 것을 도와 주는 것이다.

‘드넓은’ 이라는 말은 보들레르에게 있어서, 또한 지고한 종합의 말이기도 하다. 정신의 추론적인 진행 방식과 영혼의 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는 것은, 보들레르의 다음과 같은 생각을 숙고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서정적인 영혼은 종합과도 같이 드넓은 걸음을 한다면, 소설가의 정신은 분석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이리하여 ‘드넓은’이라는 말의 기치 밑에서 영혼은 그의 종합적 존재를 발견하는 것이다. ‘드넓은’ 이라는 말은 모순적인 것들을 결합시킨다. ‘밤처럼 그리고 밝음처럼 드넓은’ 이 유명한 시구, -모든 보들레르 연구사들의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 이 시구를 이루는 요소들을 우리들은 하시시에 관한 시편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정신적인 세계는 새로운 빛으로 가득 차 드넓은 시야를 열어 보인다.’ '정신적인' 자연은, 웅대함을 그 원초의 힘과 함께 지니고 있는 ‘정신적인’ 사원은, 그러한 것이다. 시인의 전 작품들을 통해 우리들은, 뒤죽박죽으로 존재하는 귀한 것들을 통합할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는 ‘드넓은 통일’의 활동을 따라가 볼 수 있다. 철학적 정신은 일자(一者)와 다자(多者)의 관계에 관해서 끝없이 논의한다. 그런데 정녕 시적 명상의 전형이라고 할 보들레르의 명상은, 오관의 여러 인상들을 서로 조응(照應)케 하는 종합의 힘 자체 속에서 깊고 어두운 통일을 발견하는 것이다.